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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이 거쳐간 시대

 

2부 마지막에 아린과 흰 눈썹이 뛰어놀던 곳이 발해 중경으로 나왔다.

 

발해 중경은 발해 문왕이 중경-> 상경-> 동경 천도 과정에서 배운 바 있는데 반가웠다.

 

500년 이상 살아온 아린은 실제 역사에서 어떤 왕들을 거쳤을까?

 

호형의 현재 시점은 조선시대가 배경인데 4군 6진도 나오는 것을 보면 세종 시대로 얼추 유추가 된다.

 

홍펀맨 홍의부가 사민 정책으로 인해 거쳐를 옮겼다는 부분으로도 추측이 가능하다.

 

세종 때 실시한 것으로, 남쪽 백성들을 북쪽으로 이주시키는 정책4군 6진 개척으로 두만강 유역을 차지하지만 그 지역에 백성들이 없으므로 1433년 국가에서 남쪽의 백성들을 북쪽으로 이주시키는 사민 정책을 실시하였다. 사민 정책 후 그 지방 사람을 관리로 임명하는 토관 제도를 실시하였다. 참고로 북에서 남으로 백성이 이주한 때는 1950년 6 · 25 사변 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민 정책 [徙民政策] (Basic 고교생을 위한 국사 용어사전, 2001. 12. 10., 황병석)

 

아린은 주로 만주와 한반도 북쪽 지방에서 활동했을 것 같은데

 

 

발해 건국 698년~ 사민 정책을 실시한 1433년

 

사이에 만주와 한반도 북쪽에서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었던 왕들과 아린의 관계에 대해 추측해 보려 한다. 

 

먼저 고려 시대 현종

 

현종 시대엔 외적 거란의 침입이 3번이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1차는 성종)

 

그중 첫 번째는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무탈하게 지나갔고 오히려 강동 6주를 얻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란의 2차 침입에서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이 나주로 피난 간 일이 있었다. 어찌어찌 강화가

 

되긴 했지만 1018년 3차 침입을 하였는데 이때 강감찬이 흥화진과 귀주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아린이 모종의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지도상으로는 한반도 서북쪽의 일이라 아린의 활동 지역과 거리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아린의 기폭발로 흥화진에서 거란족을 쓸어버리는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ㅎㅎ

 

강감찬-귀주대첩-거란
귀주대첩

토막 역사 상식

강감찬이 수공으로 승리를 거둔 것은 흥화진 전투였고 귀주대첩은 의외로 허허벌판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물의 힘이 근원인 아린이 흥화진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귀주 대첩의 승리는 강물을 막은 덕분일까? (naver.com)

 

귀주 대첩의 승리는 강물을 막은 덕분일까?

[ 1. 강물을 막아 거란군을 무찌른 것은 흥화진 전투다] 귀주 대첩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해. “귀주 대첩은 고려의 장수 강감찬이 쇠가죽으로 강물을 막아 11만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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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커 물길을 잡아라.

어흥